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한국 건축 (문단 편집) == 역사 == 주거의 경우 고대부터 근대 이전까지 동양문화권은 유달리 주거에서 단층 건축을 선호했다. 따라서 고대에는 2층이 흔했을거라는 상상은 적어도 종교나 권위적 건축으로 한정한다면 맞는 말이지만, 그 외에는 조선 후기처럼 단층이 절대다수였다. 물론 지역마다 일부 예외도 있지만 대체로 먹고 자는 집은 2층 이상을 싫어했고, 복층 건물은 상업적, 종교적, 권위적이라는 한정적인 목적으로 지었다. 따라서 한국 건축에서 복층을 보기 힘든 이유 첫번째는 이것이다. 2층이상의 한옥 건축이 흔했던 시기는 고대도, 중세도 아니고 한옥에 서양 건축기법이 도입된 근대부터다. 다만 조선 전기 양식의 양반가옥, 누각, 제사건축, 종교나 궁궐 건축에는 다락이라는 복층이 상당수 보인다.[* 지금까지 남아있는 덕수궁의 [[덕수궁 석어당|석어당]], 일제강점기에 불타 없어진 창덕궁의 징광루는 대놓고 실내에 계단이 있는 2층이다.] 조선 후기에 들어 목재난에도 불구하고 주거 건축의 면적은 더 커졌는데, 집을 이루는 목재의 두께는 갈수록 얇아졌고 휘어진 목재 따위를 그대로 쓰는 등 목재난의 영향을 아예 비껴가지는 못했다. 그 외 건축의 경우 확실히 이전시대보다 규모가 작아졌다. 가장 큰 이유는 목재난이었다. 임진왜란 이후에도 앞다투어 대규모 건축을 계속 지으려고 했기 때문에[* 17~18세기: 금산사 미륵전, 법주사, 화엄사 각황전. 19세기: 경복궁] 소박하고 절제를 미덕으로 하는 유교의 영향이라기보단 목재난이 더 큰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